위대한 개츠비 - 아메리칸 드림의 파멸과 순수한 사랑의 비극을 그린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

작품 소개와 문학사적 의의
1925년 스크리브너스 출판사에서 발행된 『위대한 개츠비』는 프랜시스 스콧 키 피츠제럴드(1896-1940)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T.S. 엘리엇은 이 작품을 가리켜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내디딘 첫걸음"이라고 극찬했으며,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츠제럴드가 이 소설로 동시대를 창조했다"고 평가했다.
이 소개에서 주목할 점은 작품이 발표된 시대적 배경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호황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동시에 금주법(1920-1933) 시행과 재즈 음악의 유행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혼란의 시기였다. 피츠제럴드는 이러한 '재즈 시대(Jazz Age)'의 허상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문학적 형상화에 성공했다.
특히 개츠비라는 인물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들여다본 작가의 시선은 예언적이라 할 만하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을 예고하듯, 피츠제럴드는 이미 1925년에 물질적 성공의 허무함과 그 뒤에 숨겨진 정신적 공허를 정확히 진단했던 것이다.
줄거리의 구성과 서사적 특징
『위대한 개츠비』의 줄거리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상징과 암시가 숨어 있다. 1922년 뉴욕 웨스트에그에 이사온 닉 캐러웨이가 이웃집의 신비로운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와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국 한 남자의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과 그 비극적 결말을 그린 현대판 비극이다.
줄거리의 핵심은 개츠비가 5년 전 사랑했던 데이지 뷰캐넌을 되찾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제임스 가츠(개츠비의 본명)는 부자 집안의 데이지를 사랑하게 되지만, 1차 대전 참전으로 그녀를 떠나야 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 뷰캐넌과 결혼한 사실을 알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이스트에그가 내려다보이는 웨스트에그에 호화 저택을 짓고,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어 그녀의 관심을 끌려 한다. 닉을 통해 데이지와 재회한 개츠비는 잠시 그녀의 마음을 되찾는 듯 보이지만, 데이지는 결국 개츠비와 함께 떠나기를 거부한다. 절망한 개츠비는 데이지가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낸 사실을 숨기고 대신 죄를 뒤집어쓰다가, 피해자의 남편 윌슨에게 살해당한다.
주요 인물 관계
- 제이 개츠비 - 본명 제임스 가츠,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신비로운 백만장자로 변신
- 데이지 뷰캐넌 - 개츠비의 과거 연인, 부유한 가문 출신, 톰과 결혼
- 톰 뷰캐넌 - 데이지의 남편, 예일 출신 상류층, 머틀과 불륜
- 닉 캐러웨이 - 화자, 중서부 출신, 개츠비의 이웃이자 데이지의 사촌
- 머틀 윌슨 - 톰의 정부, 윌슨의 아내
서평: 아메리칸 드림의 해체와 재구성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의 다층적 의미 구조다. 표면적으로는 개츠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이지만, 깊이 읽어보면 1920년대 미국 사회의 전면적 진단서이자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임을 알 수 있다.
피츠제럴드의 문학적 성취는 개츠비라는 인물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양면성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데 있다. 개츠비는 자수성가의 전형이지만, 그의 성공은 윌프샤임과의 밀주 거래와 같은 불법적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1920년대 신흥 부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 자체의 허상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개츠비가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의 순수한 사랑과 꿈에 대한 절대적 헌신 때문이다.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물질적 쾌락과 도덕적 타락에 빠져 있는 가운데, 개츠비만이 데이지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모든 부정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사랑이라는 순수한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작품의 서평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피츠제럴드의 상징주의적 기법이다. 개츠비가 매일 밤 바라보는 데이지 집 부두의 '푸른 빛(green light)'은 희망과 꿈, 그리고 미국 신대륙에 대한 초기 이민자들의 꿈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빛은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환상임이 드러나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무함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된다.
또한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의 지리적 구분은 신흥 부자와 기성 귀족 계층의 사회적 구분을 나타낸다. 개츠비는 아무리 많은 부를 축적해도 이스트에그의 기성 사회에 진정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이는 미국 사회의 계급 고착화와 아메리칸 드림의 한계를 보여주는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다.
문학적 기법과 서술 구조
『위대한 개츠비』의 서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피츠제럴드의 탁월한 문학적 기법이다. 닉 캐러웨이를 화자로 설정한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작품에 객관성과 신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독자가 개츠비에 대해 점진적으로 알아가는 미스터리적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피츠제럴드의 서정적이면서도 정확한 문체다. 재즈 시대의 화려함과 퇴폐를 동시에 포착하는 그의 필력은 마치 1920년대 미국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생생함을 제공한다. "개츠비의 푸른 정원은 속삭임과 샴페인 그리고 별빛으로 가득 찼고, 남자와 여자들이 그 사이를 부나비처럼 오갔다"는 묘사는 그 시대의 향락적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현대적 의미와 문학사적 유산
『위대한 개츠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적 불평등,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등은 21세기 현재에도 유효한 사회적 쟁점들이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츠비의 이야기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부의 축적이 곧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작품의 메시지는, 물질적 성공에만 매몰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이 작품은 미국 문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유럽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미국만의 독특한 경험과 가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피츠제럴드의 성취는, 이후 헤밍웨이, 포크너 등 미국 문학의 황금기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작가와 작품의 평행선
『위대한 개츠비』의 서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작가 피츠제럴드의 삶과 작품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피츠제럴드 자신이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에서 상류 사회를 경험하고, 젤다 세이어와의 사랑을 위해 성공에 목매었던 경험은 작품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특히 젤다가 피츠제럴드의 가난을 이유로 처음 결혼을 거부했다가, 그의 작품 성공 후 결혼한 사실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러한 자전적 요소가 작품에 더욱 깊이 있는 감정적 진실성을 부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피츠제럴드가 생전에 이 작품으로 얻은 수입은 100달러 남짓에 불과했다.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그의 사후에야 인정받았으니, 이 또한 개츠비의 비극적 운명과 묘하게 겹쳐진다.
결론: 영원한 고전의 반열에 서다
『위대한 개츠비』는 단순한 연애 소설이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을 넘어선다. 이는 인간의 꿈과 현실, 사랑과 좌절, 성공과 허무라는 영원한 주제를 1920년대 미국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에 완벽하게 투영한 보편적 작품이다.
피츠제럴드가 창조한 개츠비는 미국의 아이콘을 넘어 전 세계적인 문화 기호가 되었다. 그의 순수한 사랑과 파멸적 열정, 그리고 궁극적인 좌절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조건을 상징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과거는 되돌릴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개츠비처럼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가 되어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은 한 시대의 초상을 그리면서도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진실을 포착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며, 이 작품이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로 평가받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