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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서평 - 정조의 개인 성찰에서 시작된 151년간의 국정 기록

생각하는세빈이 2025. 5. 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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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서평
- 정조의 개인 성찰에서 시작된 151년간의 국정 기록

소개: 『일성록』은 1760년부터 1910년까지 151년간 기록된 조선의 국정일기로, 정조의 개인적 성찰에서 시작하여 국가의 공식 기록으로 발전한 독특한 사료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 방대한 기록물은 조선후기 정치·사회·문화사 연구의 핵심 자료이자, 왕의 일기라는 형식이 국정 운영의 도구로 활용된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이다.

일성록의 기원과 성격

『일성록』의 모태는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작성한 『존현각일기』이다. 정조는 『논어』의 증자(曾子)가 한 말인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즉 '나는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한다'"는 구절에 감명받아 자기 성찰의 도구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일과 기록이 아닌 도덕적 수양과 학문 연찬을 위한 능동적 행위였다.

일성록 형성 과정:
• 1752~1759년: 세손 정조의 개인일기(존현각일기)
• 1776~1783년: 정조 즉위 후 개인일기 지속
• 1783년: 규장각 관원이 작성, 5일마다 왕이 재결하는 공식 기록으로 전환
• 1785년: 현재와 같은 체재 완성

줄거리와 구성 - 강목체의 혁신

『일성록』의 줄거리는 단선적 서사가 아닌 날짜별 국정 현안을 강목(綱目)체로 정리한 구조를 갖는다. 강(綱)은 주요 사안의 표제어를, 목(目)은 세부 내용을 담고 있어 후대 왕들이 빠르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의 편년체와는 다른 독창적 형식이다.

내용 구성을 보면 「천문류」, 「제향류」, 「임어소견류」, 「반사은전류」, 「제배체해류」, 「소차류」, 「계사류」, 「초기서계별단류」, 「장계류」, 「과시류」, 「형옥류」 등의 순서로 체계화되어 있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국정의 다양한 영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실무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실용적 고안이었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서평

1. 개인사와 국가사의 접점

『일성록』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개인의 내면 성찰이 국가 기록으로 확장된 점이다. 정조의 개인적 수양론이 국정 철학으로 발전하고, 최종적으로 후대 왕들의 국정 운영 지침서가 된 과정은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도 독특한 사례다. 이는 서구의 절대왕정과는 다른, 도덕 정치와 민본주의를 추구했던 조선 후기 정치 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비판적 관점: 왕의 관점에서 기록된 일기체 형식은 필연적으로 주관성의 한계를 갖는다. 비록 규장각 관원들이 객관적 기록을 위해 노력했지만, 왕의 재결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필터링은 불가피했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의 경우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2. 실용성과 접근성의 혁신

『일성록』이 『승정원일기』와 차별화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실시간 열람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이 후대에야 편찬되어 당대 국정에 직접 활용되기 어려웠던 것과 달리, 『일성록』은 5일마다 정리되어 즉시 참고할 수 있었다. 이는 정보의 신속한 공유와 활용을 통한 국정 효율성 제고라는 현대적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스템이었다.

정조는 "일기의 범례를 잘 만들지 않으면 『승정원일기』와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하며, 기존 기록물과의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는 그가 추구한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국정 운영 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 동아시아 문명사적 의의

18~20세기 『일성록』 기록 시기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입과 동아시아 전통 질서의 해체 과정과 겹친다. 이 시기의 기록들은 단순히 조선 내부의 정치사만이 아니라 동서양 문물 교류, 근대화 과정, 제국주의 충격과 대응 등 세계사적 변동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일성록』은 한 국가의 기록을 넘어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중요한 증언이다.

사료적 가치와 한계

독창적 장점들

『일성록』은 조선 3대 연대기(『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특히 다른 연대기에는 기록되지 않은 세부적 정보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의금부와 형조의 형옥 기사, 암행어사의 서계별단, 사행견문별단, 상언 및 격쟁 관련 자료 등은 『일성록』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내용들이다.

또한 강목체 편찬 방식은 주제별 검색을 용이하게 하여 후속 연구자들에게 실질적 편의를 제공한다. 151년이라는 장기간에도 불구하고 결본이 29개월 33책에 불과하다는 점도 기록의 연속성과 체계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구조적 한계들

그러나 『일성록』의 한계도 분명하다. 우선 왕 중심의 시각으로 기록되어 민중의 목소리나 하층 계급의 실상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 또한 1827~1830년 효명세자 대리청정 시기처럼 『익종대청시일록』이 별도로 작성된 경우, 완전한 국정 현황 파악을 위해서는 여러 자료를 종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정조 이후 국왕의 직접 관여가 줄어들면서 기록의 질적 수준이 저하된 것도 지적할 만하다. 특히 세도정치기와 일제강점기에는 기록의 객관성과 완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현대적 활용 가능성

디지털 시대에 『일성록』의 활용 가능성은 무한하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서 진행 중인 전산화 사업과 번역 작업은 이 방대한 자료를 더 많은 연구자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2015년 정조분 677책의 번역 완료는 중요한 성과였지만, 전체 완역까지는 여전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빅데이터 기법을 활용한 텍스트 마이닝, 네트워크 분석 등을 통해 『일성록』에서 새로운 역사적 패턴과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 특히 정책 결정 과정, 인사 동향, 사회 현상의 변화 추이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기대된다.

결론 - 살아있는 역사의 증언

『일성록』은 정조 개인의 성찰에서 시작하여 151년간 조선의 국정을 기록한 독보적 사료다. 개인 일기에서 국가 기록으로의 전환 과정은 조선 후기 정치 문화의 특성을 잘 보여주며, 실용적 편찬 방식은 효율적 국정 운영을 위한 정조의 혁신 의지를 반영한다.

물론 왕 중심의 관점, 기록의 주관성, 후기의 질적 저하 등 한계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들조차 당대의 정치 문화와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다.

현대의 연구자들에게 『일성록』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의 증언이다. 디지털 기술과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통해 이 방대한 자료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조선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일성록』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지적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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